'엘니뇨에 역대급 강해진 태풍' 동아시아는 대비가 돼있을까?

바다로 나가는 어선들의 모습
사진 설명, 지난 8월 초강력 태풍 '돌핀'이 상륙한 중국 장쑤성에서는 붉은빛이 감도는 하늘 아래 어부들이 다시 바다로 나갔다
    • 기자, 조엘 긴토
    • 기자, BBC News
    • Reporting from, 싱가포르
    • 기자, 쿠루미 모리
    • 기자, 도쿄 특파원
    • 기자, 대런 베트
    • 기자, 선임 기상 캐스터
  • 게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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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만, 중국, 일본, 한국의 해안가에 사는 주민들에게 거친 날씨는 일상의 당연한 일부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의 기상 현상은 이 지역에서도 이례적이었다.

엘니뇨로 인해 더 강력해지고 때로는 예측할 수 없었던 태풍이 연쇄적으로 덮치면서 동아시아 전역에서 수십 명이 사망했다. 주요 공항이 폐쇄됐으며, 농작물과 인프라도 큰 피해를 보았다.

지난 10월, 인구 2300만 명이 사는 대만 섬 전체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태풍이 북동부 해안으로 접근하면서 대만 전역이 거의 마비됐다. 5등급 허리케인에 맞먹는 위력의 제30호 태풍 '참피'는 시속 295km의 강풍을 동반하며 주택을 무너뜨리고, 파괴적인 파도를 일으켰다.

다행히도 이 태풍은 대만에 직접 상륙하는 대신, 섬을 스쳐 지나가며 폭우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여파는 상당했다. 홍콩, 대만, 일본에서 항공편 수백 편이 취소됐으며, 필리핀 북부 바타네스 군도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해안을 강타해 해안가 고속도로가 폐쇄됐다. 일본 남부 오키나와 제도에서는 1만5000가구에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Typhoon Champi hit Taiwan and Japan

Source: NASA

엘니뇨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기후 현상으로, 동태평양에 따뜻한 해수가 모여들고 바람의 흐름이 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기상 이변을 일으킨다.

엘니뇨는 대략 2~7년 주기로 발생해 약 1년 동안 지속된다. 영국 기상청이 "생애 유례없는 강도"라고 예보한 올해의 엘니뇨는 내년 2~3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6월, 일본에서는 제7호 태풍 '메칼라'와 강력한 제8호 태풍 '히고스'가 동시에 동부 해안을 향해 달려오면서 100만 명이 대피해야 했다.

7월에는 19호 태풍 '나라'중국 광시성 남부 해안을 스치며 여러 마을이 물에 잠기고 수만 명이 피난을 떠났다.

19호 태풍 ‘나라’로 인해 침수된 중국 광시 난닝의 강변 공원과 산책로
사진 설명, 올여름 중국 남동부 도시 난닝의 이 강변 공원은 19호 태풍 '나라'로 인해 물에 잠겼다

한 달 뒤인 8월에는 슈퍼 태풍 '돌핀'이 발생해 16일 동안 태평양을 휩쓸고 다니다가 중국 동부 지역을 덮쳤다. 이에 따라 심각한 홍수가 발생하고 수십 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그달 말에는 태풍 '사우델'이 일주일 동안 중국 남동부 3개 도시에 상륙해 교통망이 마비되고 수천 명이 대피해야 했다.

지난 8월, 중국 동부 방향으로 서진하는 '돌핀'의 경로
사진 설명, 제13호 태풍 '돌핀'의 경로

'고열에 시달리는' 동아시아

한 시즌 동안 발생하는 모든 폭풍의 강도를 측정하는 '폭풍누적에너지(ACE)' 지표에 따르면, 엘니뇨의 영향으로 기록적인 수준까지 온도가 상승한 태평양은 지금도 태풍 에너지를 한껏 머금고 있다. 올해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지역의 ACE 수치는 30년 평균의 거의 2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엘니뇨는 바람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번 경우 태풍이 평소보다 더 동쪽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평소보다 따뜻한 해수 상공에서 더 오래 머무르면서 태풍의 세력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

올해 10월 대만과 일본을 향해 이동하는 제30호 태풍 '참피’의 경로
사진 설명, 제30호 태풍 '참피'의 경로

필리핀 기상청의 아나 리자 솔리스 기후학 부서장은 태평양을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에 비유했다. 그는 지난 9월 마닐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곧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난달, 일본 기상청이 엘니뇨를 예측하고자 관측하는 적도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4℃나 치솟았다고 발표했다. 이는 1949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로, 종전 기록은 1997년 12월의 3.6℃였다.

중국 기상청은 엘니뇨의 영향으로 향후 3개월 동안 해수면 온도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태풍은 보통 9~10월경에 가장 활발하지만, 이미 연이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이 지역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태풍으로 물에 잠긴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옮기고 있는 중국 시민들의 모습
사진 설명, 올해 엘니뇨 현상이 심화되면서 중국에는 태풍이 연이어 덮치고 있다

'매우, 매우 두려운' 시뮬레이션

지난 8월, 제15호 태풍 '찬홈'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평소 경로와 달리 동쪽에서 서쪽으로 일본을 횡단하며 기상 관측 전문가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재난 대비 자원이 풍부하고 관련 체계를 갖춘 일본 당국은 주민들을 신속하게 대피시킬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도 있을 것이다.

기온 상승이 태풍 위험을 얼마나 키우는지 더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필리핀 마닐라의 기후학자 라파엘라 제인 델피노와 동료 연구진은 60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2013년 초강력 태풍 '하이옌'을 포함해 최근 필리핀을 강타한 초대형 태풍들을 대상으로 모의실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매우, 매우 두려운 결과"를 마주하게 됐다고 한다. 기온이 상승하면 누적 강우량은 무려 2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몬순 비로 인한 홍수와 연간 약 20회의 열대성 폭풍이 주요 재난 위험 요인으로 떠오른 필리핀으로서는 암울한 결과다.

최근 몇 년간 홍수로 인해 도시 전체가 며칠 동안 마비되기도 했다. 매년 반복되는 이러한 고통에 지친 필리핀 국민들은 부정부패에 항의하며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부정부패로 인해 홍수 방지 프로젝트 예산에 써야 할 수백만 달러가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델피노는 필리핀 대학교 웹사이트에 게재된 글을 통해 지역사회의 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하려면 지도자와 공무원들이 기후 위험을 보다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영상 설명, 몇 주간 이어진 몬순 비로 인해 올해 8월 필리핀의 한 강은 쓰레기로 뒤덮였다

재해에 대비하기

한편 각국은 당면한 영향에 대비하고 있다. 일본 당국은 시민들에게 태풍 시즌을 대비해 식량과 생필품을 비축하고, 강풍 시 치명적일 수 있는 야외 가구를 단단히 고정할 것을 당부했다.

중국은 지방 공무원들에게 재해 취약 지역을 파악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경보 및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필리핀과 동남아시아 인근 국가들은 식량, 특히 쌀 생산 차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으며, 비료 공급 등 농민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유엔개발계획(UNDP)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무소는 최근 엘니뇨에 대응할 수 있는 정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지역사회의 엘니뇨 피해 규모는 수년 전에 이미 결정된 셈입니다. 도로와 주거지가 어디에 건설됐는지, 수자원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누가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지, 공공 예산에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엘니뇨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구축해 온 회복력은 시험대에 오릅니다.이번 엘니뇨 역시 지역사회의 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