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도 또 올라온다'…성착취물 사이트 약 30% 줄인 한국, 이번엔 다를까

휴대폰 하는 손 뒤에 성착취물 이미지가 보인다
    • 기자, 김효정
    • 기자, BBC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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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온라인에서 성착취물을 반복적으로 유포하는 불법 사이트를 통째로 폐쇄하는 방식으로 대응을 강화한 뒤, 현재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된 사이트가 한 달 만에 2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호소는 '지워도 또 올라온다'는 것이다. 피해 촬영물을 하나씩 찾아 지우는 방식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재유포를 막기 어려웠다.

정부의 새로운 대응은 성착취물이 다시 나타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피해 영상에서 '사이트'로

지난 8월 20일 성평등가족부 등 관계부처는 디지털 성범죄 대응의 초점을 개별 피해 촬영물 삭제에서 불법 사이트 자체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온라인에 퍼진 피해 촬영물을 찾아 삭제하거나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관계 기관이 함께 불법 사이트를 추적해 운영자를 검거하고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는 방식이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달 22일 이 같은 범정부 대응 결과, 정부가 파악한 '활성 불법 사이트'가 한 달 사이 6683개에서 4736개로 줄었다고 밝혔다. 1947개, 약 29%가 감소한 수치다.

경찰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불법 사이트 운영자 32명을 검거하고 66개 사이트의 운영을 중단시켰다.

특히 이 가운데 16개 사이트는 개발자까지 검거해 서버에 저장돼 있던 불법촬영물을 원격으로 압수·삭제했다.

사이트 운영으로 얻은 범죄수익 27억원도 기소 전 몰수·추징 조치했다.

피해자 삭제 지원 과정에서 확보된 불법 사이트 정보는 수사와 접속 차단에도 활용되고 있다. 수사가 필요한 사이트는 경찰에 넘기고, 관계 기관은 접속을 차단하거나 서버를 제공하는 업체에 서비스 중단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불법촬영물 등 유통 사이트 심층분석을 위한 관계부처 합동 불법사이트 통합 대응 방안 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정장 차림의 원 장관은 파일을 들고 있다.
사진 설명,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불법촬영물 등 유통 사이트 심층분석을 위한 관계부처 합동 불법사이트 통합 대응 방안 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사이트 자체를 겨냥하는 방식으로 대응이 바뀐 데에는 기존 삭제 방식의 한계가 있었다.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디성센터)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상담과 피해 촬영물 삭제를 지원하고 수사·법률·의료 지원 등을 연계하는 기관이다. 성평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며 2018년 문을 열었다.

조순애 디성센터 역량강화팀장은 "기존에는 피해 영상물 하나하나를 찾아 삭제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피해 영상물이 반복적으로 유포되는 사이트와 그 운영 기반 자체를 겨냥하는 방식으로 대응의 초점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사이트 자체를 무력화하는 일은 한 개의 기관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범부처가 협력해 사이트 한 개가 폐쇄될 경우 피해 촬영물 수천 개가 한 번에 삭제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응에는 디성센터가 지난 8년 동안 피해 촬영물 삭제를 지원하면서 축적해 온 불법 사이트 관련 자료도 활용됐다.

조 팀장은 "2018년 센터가 문을 연 이후 168만 건이 넘는 삭제를 지원했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이번 불법 사이트 심층 분석의 토대가 됐다"며 "피해자를 지원하며 쌓아온 기록이 이제는 가해 구조를 무너뜨리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 촬영물이 영구히 삭제되는 것만이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을 앞당기는 가장 빠른 길"이라며 사이트 자체를 무력화해 재유포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성센터 삭제지원 담당 직원들은 하루 최소 4시간 이상 각종 디지털 성착취물을 모니터링하고 삭제하는 업무를 한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여성의 뒷모습
사진 설명, 디성센터 삭제지원 담당 직원들은 하루 최소 4시간 이상 각종 디지털 성착취물을 모니터링하고 삭제하는 업무를 한다

이 같은 문제는 BBC 코리아가 지난해 2월 디성센터 내부의 삭제 작업 현장을 취재했을 당시에도 확인됐다.

당시 삭제지원 담당자들은 피해 촬영물을 찾아 삭제해도 같은 영상이 시간이 지나 다른 사이트에서 다시 발견되는 일이 반복된다고 호소했다.

한 담당자는 "10년 전 영상도 지금 유포되는 상황"이라며 끝없이 이어지는 삭제 작업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고 있다"고 표현했다.

29% 줄었지만, 사라진 걸까

불법사이트 통합 대응 주요 추진 실적이 담긴 자료
사진 설명, 불법사이트 통합 대응 주요 추진 실적

전문가들은 여러 기관이 함께 사이트 자체를 추적하고 폐쇄하는 방식으로 대응이 바뀐 점과 실제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된 사이트 수가 줄어든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평가했다.

다만 활성 사이트가 29% 줄었다는 수치가 불법 사이트나 성착취물 유통 자체가 그만큼 감소했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감소한 사이트가 이후 어떻게 됐는지도 함께 추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이버범죄를 연구해 온 송봉규 한세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정부가 통합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실제로 최근 불법 사이트들이 주소를 바꾸는 주기가 눈에 띄게 빨라지는 등 단속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과거에는 한두 달 동안 같은 주소를 사용하던 사이트가 최근에는 일주일 단위로 주소를 바꾸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특정 시점에 운영되고 있는 사이트의 숫자만으로 불법 유통 시장 전체의 변화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사이트가 실제 폐쇄됐을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 접속만 차단됐거나 기존 주소를 버리고 새로운 주소로 옮겨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활성 사이트 수가 감소한 것과 실제로 이 서비스가 감소했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며 29% 감소한 사이트가 어떤 이유로 비활성 상태가 됐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트가 실제로 폐쇄됐는지, 국내에서만 접속이 차단된 것인지, 주소를 바꿔 다시 운영되고 있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추적해야 이번 감소가 실제 불법 유통 시장의 축소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버범죄와 형법을 연구해 온 이원상 조선대 법학과 교수 역시 사이트를 폐쇄하는 방식 자체는 불법 성착취물 유통을 위축시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이트를 만들어도 관계 당국이 계속 찾아내 폐쇄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운영자 입장에서는 언제든 사이트를 잃을 수 있다는 부담이 커지고, 사이트를 이전처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시적이든 어떻게 됐든 정부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폐쇄하면 줄긴 줄 것"이라며 "이런 사이트들을 계속 폐쇄하게 되면 운영하는 사람들도 정부가 언제든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부분에서 억제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이트 하나가 사라졌다고 그 안에서 유통되던 콘텐츠까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운영자가 새로운 주소로 사이트를 다시 만들거나 기존 사이트를 복제한 이른바 '미러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 없어졌던 게 내일 또 생길 수 있으니까 계속 쫓고 쫓기는 싸움인 것"이라며 "장기간까지 계속 줄어들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대응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인 감시와 추적이 가능한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경 밖 서버 문

사이트를 계속 추적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서버가 해외에 있는 경우다.

디성센터는 BBC의 질의에 해외 서버로 인한 관할권의 한계를 불법 사이트를 무력화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가장 근본적인 어려움으로 꼽았다.

국내에서 접속을 차단하더라도 해외 서버에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운영자는 주소만 바꿔 사이트를 다시 열 수 있다.

일부 운영자들은 단속에 대비해 수십 개의 인터넷 주소를 미리 확보한 뒤 기존 주소가 차단되면 다른 주소로 옮겨가기도 한다. 새로운 주소는 메신저나 소셜미디어, 링크를 모아놓은 사이트 등을 통해 다시 이용자들에게 전달된다.

조순애 팀장은 "국내법상 삭제 요청을 거부할 경우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 서버가 해외에 있는 경우 이를 실제로 집행하기 어렵다"며 "일부 사이트는 수십 개의 도메인을 미리 구입해 놓고 수시로 주소를 바꾸는 등 다양한 우회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서버가 있는 국가의 규제기관이나 국제 핫라인, 글로벌 플랫폼과 인터넷 인프라 사업자 등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국제 공조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제 공조를 통해 대형 불법 사이트를 폐쇄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독일과 네덜란드 수사당국은 유럽 연합 법집행협력청(유로폴)의 지원을 받아 대형 아동 성착취물 플랫폼 '키드플릭스(Kidflix)'의 서버를 압수하고 사이트를 폐쇄했다.

유로폴에 따르면 2022년 4월부터 폐쇄 직전인 2025년 3월까지 이 사이트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180만 명의 이용자가 접속했다. 서버를 압수했을 당시에는 약 7만2000개의 영상이 저장돼 있었다.

35개국 이상이 참여한 수사를 통해 약 1400명의 용의자가 특정됐고 이 가운데 79명이 체포됐다. 유로폴은 이를 아동 성착취 범죄와 관련해 자체 전문가들이 수행한 작전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이 작전을 통해 서버 압수와 함께 대량의 성착취물이 확보됐고, 운영자와 이용자에 대한 추적도 이뤄졌다.

하지만 해외에 있는 서버를 실제로 압수하거나 그 안에 저장된 자료를 확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해당 국가의 수사기관과 공조하고 현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원상 교수는 국경을 넘나드는 사이버 범죄의 속도를 기존 수사 절차가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다.

그는 "물리적으로 해외에 있는 서버를 압수하려면 국제 공조를 해야 하는데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며 사이버 공간에서 빠르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수많은 사이트의 서버를 모두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디성센터의 삭제지원 시스템 화면
사진 설명, 디성센터의 삭제지원 시스템 화면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수사 방식도 검토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 등 관계부처는 수사기관이 일정한 요건 아래 불법 사이트에 직접 접근해 범죄 증거를 확보하고 피해 촬영물 원본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능동적 방어'의 법적 근거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 발표 당시 관계부처는 이를 호주와 영국 등에서 시행 중인 일종의 '합법적 해킹'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에는 제도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사이버 범죄 수사를 위해 온라인에서 직접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수사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변화한 범죄 환경에 맞는 법적 수사 수단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새로운 수사 방식이 도입되더라도 주소를 바꿔 다시 나타나는 사이트를 지속적으로 찾아내는 작업은 필요하다.

이번에 파악된 사이트가 도메인을 변경하거나 기존 사이트를 사칭해 다시 나타나는 경우에도 추적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이번 성과는 무엇보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조치가 어렵다고 했던 불법사이트 무력화 조치가 실질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정부가 힘을 모아 피해자들이 성착취물 재유포로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외에 숨어도, 도메인을 변경·사칭해도 불법사이트를 끝까지 추적하여 뿌리뽑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