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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된 탁신 전 태국 총리...하지만 '탁신 시대'는 끝났다?
- 기자, 조나단 헤드
- 기자, 동남아시아 특파원
- Reporting from, 방콕
- 기자, 하타이칸 트리수완
- 기자, BBC 태국어 서비스
- Reporting from, 끌롱 쁘렘 중앙 교도소
- 읽는 시간: 3 분
지난 20년 중 대부분을 망명지에서 보냈고 최근 8개월은 교도소에 있었으나,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존재감은 여전히 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탁신 전 총리가 2001~2006년 총리 재임 기간 저지른 부패와 권력 남용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은 지 8개월 만인 지난 11일(현지시간) 가석방된 사건은 태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흰색 셔츠에 짧은 머리를 한 76세의 탁신 전 총리가 이날 태국 방콕의 끌롱 쁘렘 중앙 교도소에서 나오자, 일제히 붉은 옷을 입은 지지자 수백 명은 환호했다.
그는 출소 직후 기자들에게 자신의 건강 상태는 양호하며 "안도한다"고 전했다.
교도소 밖에서는 그의 딸이자 정치적 후계자인 패통탄 친나왓 전 총리를 비롯한 가족들이 그를 맞이했다.
탁신이 속한 '프아타이'당은 그가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론들은 그가 앞으로 태국 정치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여러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출신인 탁신은 2001년 1월 권력을 잡은 순간부터 강한 지지와 반대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태국을 재편하고자 했다.
그가 2006년 9월 쿠데타로 실각한 후에도 프아타이당은 선거에서 계속해서 승리했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당파 기득권층은 그의 과도한 야망을 경계했고, 결국 이는 그의 측근들을 겨냥한 여러 건의 사법 판결, 수년간에 걸친 폭력적인 거리 시위, 2014년 또 한 번의 쿠데타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해외 망명지에서 계속해서 당을 이끌었으며, 이른바 '대타협'이 성사되며 보수 성향의 반대 세력은 그가 2023년 귀국하도록 허용했고, 탁신은 당시 다시 집권한 프아타이당의 중심에 섰다.
그의 변함없는 인기는 교도소 밖에 모인 지지자들만 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지자인 마이사 롬부아롯은 그의 출소를 보고자 700km를 운전해왔다.
롬부아롯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그에게 리치 20kg을 가져다줬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좋은 것을 먹길 바란다"며 그가 정치 활동을 계속하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그가 이 나라를, 지금 너무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를 바란다 … 그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탁신은 손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지만, 결코 쉽게 물러날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탁신이 수감된 동안 프아타이당은 지난 2월 총선에서 사상 최악의 결과를 기록했다.
개혁 성향의 국민당(인민당)에 이어 3위로 밀려났고, 캄보디아와의 국경 전쟁 이후 민족주의 정서가 고조되며 이득을 본 보수 성향의 폼짜이타이당에도 뒤처졌다.
이에 프아타이당은 새 정부에서 소수 연립 파트너로 남게 됐다.
정치 분석가 켄 로하테파농트는 "출소한 탁신은 완전히 새로운 정치 환경과 마주하게 됐다"고 표현했다.
"(그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프아타이당은 중소 정당으로 전락했습니다. 탁신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와 프아타이당이 직면한 도전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당은 탁신의 공개 활동 복귀가 당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차세대 지도자들에게 주목하는 것이 더 나을지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태국 내부에서는 탁신이 2023년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복귀할 수 있었던, 왕당파와의 '대타협'이 왜 이토록 빨리 무너졌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보수 세력은 처음부터 법원을 이용해 프아타이당이 이끄는 정부를 무력화시키려 했던 것일까. 실제로 그의 첫 총리 후보 역시 비교적 사소해 보이는 이유로 법원에서 해임됐다.
아니면 탁신이 배후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한편 당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논란이 될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하려 하면서 압박에 나선 것일까.
어느 쪽이든, 탁신과 태국 보수 세력 사이 간 불신은 이제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가 갈망한다 하더라도, 정치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 어려울 수도 있다.
지난 25년간의 태국은 사실상 '탁신 시대'로 불릴 만했다. 하지만 그 시대는 이제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