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전략, 실패' 9・11 테러의 교훈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

9.11 테러 당시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사진 출처, BBC/Getty Images

    • 기자, 프랭크 가드너
    • 기자, BBC 안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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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수없이 많은 지도자들이 외쳐왔듯이, 정부의 첫 번째 책무는 국민 보호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정부는 이 책무를 지키는 데 명백하게 실패했다.

관련 첩보들은 이미 존재했으나, 비극적이게도 그 누구도 제때 그 단서들을 하나로 연결 짓지 못했다.

'9·11 테러'로 알려진 이 미국을 향한 공격은 이후 미국의 대응과 더불어 21세기 첫 20년의 대외, 안보, 정보 정책을 규정한 사건이 됐다.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대원들이 비행기들을 납치해 세계 무역센터에 충돌시켰을 때, 나는 중동 지국에서의 파견 근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서쪽의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을 지나 텔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으로 나를 태워주던 팔레스타인 출신 택시 기사는 갑자기 차 안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그러더니 "미국에서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났다"고 외쳤다.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날 2977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알카에다의 네트워크 및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으로 망명 중인 이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를 추적하기 위한 전담 태스크포스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9·11 테러 발생 9일 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후 25년 동안 대서양을 사이에 둔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에서는 수많은 첩보 활동의 성공 및 실패 사례가 이어졌다. 테러 음모를 사전에 방지하고, 용의자들을 관련 혐의로 체포해 재판에 넘긴 성공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차원에서는 어떨까.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지 25년이 지난 현재, 정보 수집·대테러 활동·전략적 계획은 어떻게 변했을까.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학교 안에 있는 모습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사건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학교를 방문 중이었다

최악의 정보 실패

9·11 테러가 최악의 정보 실패였다는 점,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정보 기관들이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최악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서로 다른 단서를 연결하지 못한 데 따른 실패였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당시 CIA와 미 연방수사국(FBI) 모두 각각 관련된 정보를 갖고 있었는데, 이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기만 했더라도 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발표된 9·11 테러 조사 위원회 보고서는 미국 정부의 "상상력· 정책· 역량· 관리의 실패"를 지적했다. 아울러 CIA와 FBI가 정보를 제대로 평가하고 공유하지 못했으며, 테러 음모를 저지하는 데 필요한 조치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이 가장 기본적인 교훈을 이날 이후 완벽히는 아니지만 대체로 받아들였다. 이에 2001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보안국(MI5)'과 '대테러 경찰 조직' 간 오랜 경쟁 관계는 상당 부분 해소됐으며, 영국 전역에 여러 '융합 센터'가 설립됐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런던에 최고 수준의 보안 수준을 갖춘 '대테러 작전 센터(CTOC)'가 설립됐다.

이곳에서 MI5 정보 요원들은 테러 음모를 저지를 위해 현장에서 움직이는 경찰관들과 말 그대로 바로 옆자리에 앉아 일하기도 한다. 혹은 FBI 소속 미국 연방 요원이나, 영국 정부통신본부에서 파견된 언어 전문가와 나란히 앉아 일할 수도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보기관들도 뿌리부터 개혁에 들어갔다. 워싱턴 D.C. 외곽에는 '국가대테러센터'가 설립됐고, 18개에 달하는 서로 다른 미국 정보 기관들 간 필요한 정보가 적절히 공유되도록 '국가정보국장' 직책이 신설됐다.

아울러 CIA와 영국의 CIA 격인 '비밀정보국(MI6)'은 세계에서도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가 정보를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즈' 동맹이 이를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쌍둥이 빌딩(세계 무역 센터 1,2)에 비행기가 충돌한 그날 이후로도 정보 수집과 평가 및 전략 수립 분야에서는 여전히 참사 수준의 실패들이 계속해서 발생해왔다.

일례로 2023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MI6은 자사의 정보가 정치적 논쟁거리화되는 것을 어리석게도 막지 못했으며, 그 결과 1950~60년대 이중간첩 킴 필비와 다른 소련 첩보원들의 배신 사건 이후 최악의 평판 위기를 맞이했다.

영국의 정보기관 MI6 본청의 모습

사진 출처, Bloomberg via Getty Images

사진 설명, 영국 정보기관 MI6는 정보 유출 파문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이끄는 이라크가 여전히 이른바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라는 미국 측의 압도적인 정치적 압박 속에서, MI6는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해당 정보는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라크는 과거에 실제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 무기들은 1991년 걸프전 이후 모두 파괴된 상태였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MI6는 현장의 요원들로부터 들어오는 미가공 첩보의 평가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이에 오늘날에는 이란이나 북한 같은 지역이나 알카에다와 같은 금지된 테러 조직 내부의 정보원으로부터 첩보를 수집하는 정보원 관리 요원과, 그 정보를 검증하고, 따져보며, 종종 추가적인 증빙 자료도 요구하며 정보원 관리 요원에게 다시 돌려보내는 보고서 작성팀의 역할이 명확히 분리돼 있다.

이라크 전쟁 당시 사단장으로 복무했던 영국의 리처드 시레프 장군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심각한 결함이 있는 정보에 근거했다"고 표현했다.

"우리가 여기서 교훈을 얻었을까요? 아니요, 저는 우리가 교훈을 얻는데 서툴다고 생각합니다 … 지휘관으로서 우리가 전략적 실패로 향해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했습니다."

이라크 침공 이후 다시 한번 조사가 진행됐고, 이에 '버틀러 검토 보고서'가 나오게 됐다. 해당 보고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에 대한 영국의 정보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으며, 검증되지 않은 정보원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MI5 또한 테러 음모를 수없이 많이 확실하게 저지해왔으나, 몇 차례 실패하기도 했다.

2007~2013년 MI5를 이끌었던 조나단 에반스는 "9·11 테러 이후, 영국에 대한 가장 시급한 안보 위협은 알카에다 및 이와 연계된 개인과 단체로부터의 테러 위협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고 회상했다

2004년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이라크 파병 중인 영국군 부대를 방문한 모습

사진 출처, AFP via Getty Images

사진 설명,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는 당시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했다

하지만 당시 데이터베이스에 지정된 주요 인물이 2만 명 이상인 데다가 동시에 수많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MI5는 어떤 사건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지 늘 고민해야 했으며,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MI5가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일례로 2005년에는 52명의 목숨을 앗아간 7·7 런던 자살 폭탄 테러를 막지 못했다. MI5는 이후 주동자로 밝혀진 모하메드 시디크 칸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그가 어떤 음모를 꾸미는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폭탄 테러는 또 다른 실패로 꼽힌다.

오늘날 테러의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에반스 전 국장은 "전반적인 양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비국가적 테러는 여전히 심각한 우려 사항이지만 국가적 차원의 위협 또한 …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비국가적 테러 못지않게 국가 안보의 중대한 우려 사항입니다. 이러한 위협은 러시아와 이란 및 이들의 대리 세력,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란 테헤란의 한 광장에 무기가 배치돼 있는 모습

사진 출처, AFP via Getty Images

사진 설명, 이란과의 전쟁은 정책적 착오로 인식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한 결정 역시 정보 분석 및 평가의 상상력 부족에서 비롯된 실패였다고 볼 수도 있다.

걸프 지역의 모든 미국 동맹국들은 이란이 위기 상황 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심각한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경고의 목소리가 이미 있었다. 그러나 이란이 실제로 행동에 나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하자,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맞설 전략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윤리의 저울질

9.11 테러 직후, 또 다른 공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만연했다. 실제로 알카에다는 "비행기를 떼로" 보내 더 많은 건물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격을 선제적으로 막고자 서두르는 과정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수많은 인권 유린 행위를 저질렀다.

용의자들은 종종 터무니없이 조잡한 제보만을 근거로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에서 무차별적으로 체포됐다. 수백 명이 손발이 묶이고 눈가리개를 하고 기저귀를 찬 상태로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인 쿠바 관타나모 만의 미 해군 기지에 마련된 임시 감옥으로 이송됐고, 재판도 없이 투옥됐다.

인권 단체들은 미국의 도덕적 양심에 남은 오점이라며 비난했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구금한 수감자들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스캔들은 결국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고, 관련자 중 일부는 그 책임을 지게 됐으나, 더 고위급 인사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지금도 관타나모 만에서 재판 없이 구금하고 있다. 2025년에는 200명 이상을 미국에서 엘살바도르의 논란이 많은 '테러 수감 센터'로 추방하기도 했다.

9·11 테러 직후의 시기는 영국에도 인권에 있어 오점을 남긴 시기였다. 2004년, MI6는 리비아의 이슬람주의자 압델하킴 벨하지와 그의 아내를 태국에서 리비아로 납치 및 송환하는 데 가담했다. 벨하지는 그곳에서 수년간 수감 생활을 하며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으로부터 고문을 당했다.

이 사건은 결국 세상에 알려졌고, 2018년 법무장관이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하기에 이른다. 결과로 이어졌다. 오늘날, 기관 내 법률 자문팀에 따르면, 정보기관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조직은 법무팀이라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

2014~2020년 MI6 국장을 역임한 알렉스 영거는 "우리는 이번 세기의 첫 20년을 거의 전적으로 대테러 및 반군 진압에 집중하며 보냈다"고 평가했다.

고(故) 영거 전 국장은 국장직에서 물러난 직후 어느 문학 축제 자리에서 만나 내게 "우리는 군사 강국이자 전략적 도전 과제로 부상하는 중국을 간과했다"고 털어놓았다.

마찬가지로, 시레프 장군은 2016년 정치 스릴러 소설 '러시아와의 전쟁'을 집필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예견했다.

9.11 테러와 그에 뒤이은 '테러와의 전쟁'의 여파 속에서 서방 국가들이 탈레반,

ISIS 등과 싸우거나 이라크의 혼란스러운 점령 상황을 수습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니던 사이, 러시아와 중국은 초음속미사일 분야에서 혁신을 거듭하는 등 군사 분야를 대대적으로 손보기 시작했으며, 이에 한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누리던 군사적 우위는 심각하게 약화됐다.

영국의 보안 정보 업체 '시빌라인'의 수석 분석가인 샘 올슨은 "서방의 실수는 단순히 9.11 테러 이후 대테러 대응에 지나치게 집중한 데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방 세계는 경제적으로 통합되면 정치적으로도 수렴할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중국의 부상하게 된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란, 러시아, 북한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정보를 수집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진다. 2001년 당시 생체 인식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얼굴이나 홍채, 보행 인식 기술이 활용되면서 요원과 연락책 등이 은밀히 국경을 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중국의 전승절 75주년을 맞아 중국군이 행진하는 모습

사진 출처, Host Photo Agency via Getty Images

사진 설명, 지난 20년간 중국과 러시아는 크게 부상했다

그렇다면 서방 정보 기관은 중국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혹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할까.

오늘날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MI6의 주요 정보 수집 대상이다. 올슨은 "서방 정보기관은 중국에 대해 상당히 많이 이해하고 있다"며, "여기서 더 큰 위험은 개별적인 조각들은 갖고 있지만, 그것들이 합쳐져 무엇을 이루는지 큰 그림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힘은 더 이상 단순히 함선, 미사일, 병력 등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힘은 점점 더 반도체, 핵심 광물, 배터리, 항만, 통신, 산업 생산 능력 등과 얽히고 있죠 … 따라서 진짜 문제는 정보 수집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략적 해석의 실패가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25년 전, 9.11 테러가 발생한 날에도 미국 정보국은 이른바 개별 '퍼즐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이를 하나로 맞추지 못해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전략적 이득을 위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훌륭한 정보 수집 능력도 결국 소용없는 셈이다.

완전히 달라진 세

분명히, 뉴욕의 구름 한 점 없던 그 푸른 9월의 아침 이후 지난 25년 동안 정보 및 대테러 분야의 세계는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의 등장으로 앞으로도 계속 달라질 것이며, 일부 분야에서는 그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빠를 것이다.

그러나 상충되는 서사와 이해관계가 얽힌 이 세상에서 정보 실패·판단 실패·전략적 오판을 서방 국가들만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2022년 러시아의 참혹한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스라엘의 '자국의 9·11'이라고 묘사하는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에서의 하마스 주도 습격을 생각해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지금도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거대하고 전략적인 국가적 차원의 결정들에 관한 것이다.

영국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에 동참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을까.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주도한 '항구적 자유 작전'에 참여했다가, 20년 후 급히 철수하며 아프간을 탈레반에 다시 내 준 것은 옳았을까.

이러한 질문들과 그 밖의 수많은 의문들은 여전히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