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한국 사법부, 55년 만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정부 책임' 인정, 그 의미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국 상대 민사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화상 연결 통해 변호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출처, News1

사진 설명,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국 상대 민사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화상 연결 통해 변호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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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베트남 전쟁(1955-75년) 중 일어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한국 사법부의 첫 판단이 나왔다. 한국 사법부가 베트남전 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정부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서울지방법원 재판부(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63) 씨가 지난 2020년 4월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베트남전 참전 한국 군인, 당시 베트남 마을 민병대원 등의 증언과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응우옌 씨의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하며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응우옌 씨)에게 3000만 100원과 이에대한 지연 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퐁니·퐁넛 학살 사건은 판결이 나오기 꼭 55년 전인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중부 도시 다낭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25km 지점에 있는 퐁니·퐁넛 마을에서 발생했다. 생존자와 목격자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당시 베트남전 참전 중이던 대한민국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한국군인들은 마을 민간인 74명을 집단으로 살해했다.

당시 18살이던 응우옌 티탄씨는 학살로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고 자신도 복부에 총을 맞고 1년 간 입원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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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정부 상대 승소 처음'

응우옌 씨를 대리해 소송 진행을 담당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는 BBC 코리아에 "베트남 전쟁 중 일어난 전쟁 범죄 판결들 중 가해 군인들에 대한 개별적인 형사 판결들은 존재를 했어도 이렇게 피해자가 정부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소송은에서 승소한 것은 전 세계에서 처음 있는 판결"이라며 이번 1심 승소의 의의를 전했다.

그러면서 "베트남 전쟁에서 어느 정도 대규모의 군사 작전을 행한 국가는 미국과 한국인데 리서치 과정에서 비슷한 사례로 확인된 것이 양국 모두의 경우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임 변호사는 또 "이 문제가 한국에서 공론화 되기 시작한 때부터 이십여 년이 지났는데 이번 판결로 한국에서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의 세 번째 국면이 시작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9년 언론으로 통해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처음 공론화 되면서 한국 정부의 진상 규명과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시작됐다.

한국 정부는 이십여 년간 '국방부 보유 자료에서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이 확인 되지 않으며 베트남 당국과의 공동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나 그러한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도 한국 정부는 '베트콩이 한국군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어 단지 한국 군복을 입고 베트남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한국군이 가해자임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또 한국군이 민간인을 살해했더라도 게릴라전으로 전개된 베트남전 특성상 정당행위이며 불법행위가 있었더라도 그 시점이 이미 수십 년 지나 시효가 만료됐다고도 주장했다.

한국 정부, '베트남 정부 사과 요구 없어'

해당 문제가 공론화 된지 이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과 베트남 양국 정부 모두 민간인 피해에 대한 논의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 내 정치적 상황이 작용했다.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 중에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전쟁 범죄를 증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 수호를 위해 조국의 부름에 헌신했다'며 한국군의 민간인 집단 학살 등 전잰 범죄 행위 공론화는 '명예 훼손'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베트남 정부는 1992년 한국과 수교할 당시부터 승전국 입장에서 굳이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베트남 정부가 당시 내전의 기억이 자국민들의 생채기를 건드려 그 화살이 국가를 향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한국 진보 정권 시기에 여러 차례 당대 대통령들의 사과 발언이 있었지만 베트남 정부가 난색을 표하면서 그 수위가 조절되어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천 득 렁 베트남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냉전이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양국이 불행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우호협력관계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며 양국 간 과거사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했다. 이어 2001년 정상회담에서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렁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이 과거 고난을 극복해 왔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다"며 "우리 국민은 마음의 빚이 있으며, 베트남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퐁니퐁넛 사건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 씨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생존자 기자회견'에서 한국군의 끔찍한 학살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출처, News1

사진 설명, 베트남전 퐁니퐁넛 사건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 씨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생존자 기자회견'에서 한국군의 끔찍한 학살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가 단위 문제 아냐.. 피해자 의사 존중해야'

임 변호사는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있어 양국 정부의 보수적인 입장을 떼어 놓고 보더라도 한국 국방부가 소송에서 보여온 '학살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가 실망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러한 문제는 국가 단위의 문제나 국가간 외교 문제라기보다는 피해자 개인들에 초점을 맞춰야 할 문제"라며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베트남 정부가 아니라 피해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주권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외교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20세기적 발상"이라며 "이 문제에 있어 피해자들이 동의해야 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너무 명확하고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에게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소송까지 제기할 정도라면 사실 그분들의 의사라는 게 분명한 상황에서 베트남 정부의 입장을 이유로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는 계속 이 문제에 대해서 외면하거나 소극적 태도를 보였는데그것이 과연 적정한 방식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1심 판결은 생존자인 응우옌 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지난 2020년 4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지 34개월 만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