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은행, '영국 사상 최장 경기 침체에 빠질 수도'

    • 기자, 디어베일 조던, 다니엘 토마스
    • 기자, BBC 비즈니스 전문기자

지난 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33년 만에 최대 인상폭으로 올리기로 한 영란은행(BOE)이 영국이 사상 최장 경기 침체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또한 영란은행은 2025년엔 실업률이 거의 2배로 치솟는 등 향후 2년이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영국 가계의 "앞날이 험난할 것"으로 경고하면서도 지금 단호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나중엔 더 상황이 나빠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란은행이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결정하면서 영국의 기준금리는 연 2.25%에서 3%로 올라갔다. 이는 1989년 이후 최대 금리 인상 폭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영란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우선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모습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식량 및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가계가 부담을 느끼게 되고, 바로 이 점이 경제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모습이다.

한편 '경기침체(recession)'란 국가 경제가 2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상황을 뜻한다.

경기침체에 빠지면 기업의 소득이 줄면서 근로자의 급여가 떨어지고 실업률이 상승한다. 이에 따라 보건이나 교육과 같은 공공 서비스를 위한 국가 세수 또한 줄어들게 된다.

영란은행은 이미 이전에도 올해 말 영국 경제가 침체기에 빠질 것이며, 내년 내내 암울한 상황이 이어지리라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영란은행은 영국 경제가 이미 올여름부터 "힘든"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하면서, 현재 상황이 내년은 물론 2024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2024년엔 총선거가 예정된 해이기도 하다.

비록 영국 역사상 가장 깊은 침체기는 아니겠으나, 기록이 시작된 1920년대 이후 최장기간인 무려 2년간 경기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경고다.

이에 더해 현재 50년 만에 최저 수준인 실업률 또한 향후 6.5% 가까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편 이번 금리 발표는 지난 9월 리즈 트러스 전 총리와 콰시 콰르텡 전 재무장관이 대규모 감세안이 포함되는 등 논란이 됐던 '미니 예산'안을 내놓은 이후 처음이다.

비록 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부 장관이 대부분 폐지하긴 했으나, 트러스 전 총리와 콰르텡 전 장관이 450억파운드(약 72조원) 규모 감세안을 발표하면서 파운드 가치가 폭락하는 것은 물론 금융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에 따라 영란은행은 혼란에 빠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개입에 나서야만 했다.

베일리 총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미니 예산이 영국의 국제적 위상을 '손상'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미 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영국의 입지와 지위가 손상됐다는 것을 매우 명백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주에 결국 트러스 전 총리는 콰르텡 장관을 경질했다.

헌트 현 장관은 "영국 정부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제일 중요한 과제는 안정성을 되찾고, 공공재정을 재정비하며, 부채 부담을 줄여 금리 인상폭을 최대한 낮게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림자내각의 레이첼 리브스 재무장관은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와중에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오르는" 상황에서 영국 가계가 이러한 고금리를 버텨낼 수 없다고 비난했다.

영란은행이 작년 12월 이후 8차례에 걸쳐 쉼 없이 금리를 올리면서 차입비용은 영국의 은행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갔던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영란은행은 기준 금리 인상을 통해 대출 이자 상환 부담을 높이면 소비가 줄어들면서 현재 진행 중인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저축을 선호하는 이들은 이러한 금리 인상 기조를 환영할 테지만,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빛, 은행 대출 등에 묶인 사람들에게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대출이 염려됩니다'

영국 동부 요크셔 이스트 라이딩 지역에 사는 미셸(58)은 승합차 대출금을 갚고 있다. 미셸은 금리가 인상되는 상황이 불안하다고 했다.

미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실소득이 급격히 감소했다"면서 "복지혜택의 기준이 되는 저소득자보다 조금 더 많이 버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중산층을 지원해야 합니다."

미셸은 사는 곳 근처에 대중교통이 없어 출근하기 위해선 자동차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대출 상환 부담이 늘어나면서 차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재택근무할 수 있지만 대부분 직장이 그렇듯이 직장에선 일주일에 3번은 제가 직접 출근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잦은 출근을 감당할 수 있을지 직장과 얘기해야 했습니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왕복 60마일(약 96.5km)이어서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한편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영란은행은 금리가 계속 오를 경우 고정금리 대출 상품의 만기가 다가오는 사람들은 연간 최대 3000파운드(약 479만원)까지 더 내야 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또한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금리 인상 기조를 지금처럼 유지할 것이라는 게 영란은행의 입장이다. 그러나 기준 금리가 5.25%까지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금융시장의 예측과 달리, 영란은행은 그렇게까지 높게 가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영란은행의 이번 기준 금리 결정에 이어 오는 17일 수낙 신임 총리는 예산안 및 재정운용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3일 파운드 가치는 달러 대비 2% 폭락했으며, 영란은행의 경고에 따라 영국 정부의 차입 비용은 상승했다.

분석: 파이살 이슬람, BBC 경제 에디터

이번에 발표된 영란은행의 회의록에선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내년 가을 기준 금리가 최고 4.5%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것이다.

낙관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미니예산이 발표된 후 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기준금리가 6%가 상승할 수 있다는, 불과 한 달 전의 암울했던 전망에 비하면 그래도 낮은 수준일 것이다.

미니예산 대부분을 폐지하는 등 수습에 나서면서 정부의 차입비용과 파운드화 가치는 다소 회복되고 있으나, 주택담보대출 및 기업 대출 시장에 여전히 부담이 가해지면서 지속해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에 영란은행은 실업률은 상승하고 가계소득은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영국 경제 상황이 미국과 유로존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는, 고통스러운 전망이다.

실제로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급격한 에너지 위기라고 예측됐던 상황이 이제 점점 더 장기화 된 에너지 및 주택담보대출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추가 보도: 엠마 펜겔리, 제시카 셔우드